2013년 8월 30일 금요일

한국식물들을 영어로? (펌)

달래 (Korean) wild chive
부추 garlic chive G N
미나리 water parsley
냉이 shepherd’s purse W
쑥갓 garland chrysanthemum, crown daisy N
쑥 mugwort, wormwood W
사철쑥 tarragon G N
백리향 thyme G N
수영 sorrel N
감초 licorice G N
월계수 bay (true laurel) G N
갓 leaf mustard G N
깻잎 green perilla N
아욱 curled mallow N
근대 spinach beet, chard, perpetual spinach, leaf beet G N
명이나물, 산마늘 alpine leek, victory onion
취나물 *no common English name
순무 turnip, rutabaga, swede turnip G N
고사리 bracken fiddlehead W
녹두 mung bean G N
칡 kudzu, japanese arrowroot W
뚱딴지, 돼지감자 jerusalem artichoke, sunchoke G W
우엉 greater burdock N
도라지 balloon flower, chinese bellflower N
더덕 bonnet bellflower N
진달래 azalea N
두릅 Japanese angelica tree (이 나물이 실은 나무의 새 순이었다.)
개암 hazelnut, cobnut, filbert G N
대추 jujube N
뽕, 오디 mulberry N
까치밥 currant N
딱총 elderberry N
모과 chinese quince
무화과 fig G N
금귤 kumquat N
귤 satsuma mandarin (흔히 보는 cuties라 불리는 clementine은 귤과 매우 비슷하지만 종이 다르다) N

G 미국 식품점에 비교적 흔히 있는 것
N 씨앗이나 모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W 잡초로 여겨지는 것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Psychoanalyzing

내 자신이 못난거나 모나거나 한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경험 그리고 기본적으로 물려받은 성품이 어우러져 만든 나만의 것이며, 내가 짊어갈 본인의 본질이다.
어떤 큰 상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의함으로, 개인에게 얹혀진 삶의 짐을 이겨내지 못한 인간으로, 치유가 필요하다고 단정짓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겠다.  과연 그렇게 단정지을수 있는 지식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내 삶 수십년을 다큐로 엮어서 본것도 아니고, 설사 봤다 하더라고 본인이 더이상 개의치 않는걸 아물지 않은 상처라고 다시 제 3자가 정의 하겠다는건 도데체 어떤 멘탈인지 궁금하다.  물론 본인도 인지 못하는 상처도 있다.  전문의도 쉽게 풀지 못하는 것들, 평생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들은 어차피 어쩔수 없잖나?  한마디로 팔자지.  어떤 예건간에, 자신의 인지와 정의 없인 말 그대로 본인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치유에 첫 걸음이다.
그것을 어떤 종교의 힘으로 이겨냈다는 인간들이 있다.  난 절대로 그들앞에서 "당신들의 그 아픔이란것들은 치유되지 못했고, 그 증거는 당신들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다만 종교를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고 위선으로 안위할뿐이다" 라고 얘기 안한다.  사실이라 할지라도.  왜냐, 이 얼마나 무례하고 불쾌한 발언인가?  아마 억장이 무너지겠지. 나한테 욕설이나 저주를 퍼부울 것이다.  아님, 아직 신을 못만나서 그렇다고, 누구도 주지않은 믿음의 무게를 재는 권리를 행사할것이 뻔하다.
치유받았다고 하는데 굳이 나 따위가 그런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한다.  무슨 권사를 받았는지 다들 신앙심 깊고 신을 영접한 예수의 제자이고 심리학자고 정신과 전문의인것처럼.

2013년 4월 23일 화요일

늙은이

아 놔, 이것참, 그 나이 먹도록 도데체 뭘 배웠나 할정도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무직원이 있다.  서빙보다가 들어온 사람도 아니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할정도로 컴퓨터쪽으론 무뇌한 한 백인 아줌마가 있다.  아놔, 그냥 퇴직하시지, 뭘 그리 길게 잡고 끄시나 생각할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힘들고 바쁜날에 말도 안돼는 문제를 해결 못하고 나를 귀찮게 했다.  그때, 속으로 무심결에 육두문자로 욕을 했드랬다.  속으로나마 경박했던 나를 꾸짖으며 생각했다.

잠깐!, 이 아줌마 울 엄마보다 나이가 만치?  울 엄니는 완전 컴맹인데, 엄니도 어떤 젊은 시끼한테 이런 대접을 받으면 우짜지?  뭐 이런 생각?

나도 나이들면, 새파란 쉬끼들이 속으로 열라 씹겠지?  저 쉐리는 아는것도 없는게 자리만 꿰 차고 있다고?

그후론 나이드신 냥반들은 무조건 이해하고 넘어가며 잘해 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2013년 2월 1일 금요일

Deist to Theist

내나이 스무살, 하와이 마우나케아 정상부근에서 태양이 지는 지평선 저너머로 보이는 한마리 말의 실루엣을 보면서 지놈 프로젝트의 선구자 프렌시스 콜린스가 접한 신비주의 경험 비슷한걸 한것 같다.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일신론자들이나 기독인 처럼 오만을 부릴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처럼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이유없는 환희의 눈물을 흘린 나는 (다행히 대마나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보다 우월한 자연의 존재를 부인할순 없었다.  그 존재의 주인을 알기위해 난 기독교를 선택했고, 자연주의가 유일신론으로 가는 수양을 했다.

결과적으론 기독교에서 희망을 보진 못했다.  제 3의 관찰자 입장으로 돌아오니 인간이 신본주의에 입각한 삶을 산다는것도 너무도 터무니 없는 일이라 느꼈다.  아직도 하와이에서의 그 아름다운 경험은 나에게 있어 신비스럽고 소중하지만, 자꾸 존재와 이유에 대해서 성급하게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자며 살고 있다.  답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천국에 갈 정도로 변화된 기독인들은 아니었기에.